http://scifian.egloos.com/2352590 에서 트랙백.
사람마다 모두 감동을 느끼는 순간이 다르다. 트랙백의 원문에서는, 자연 풍광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하고, 내친구 징군은, 게임의 기막힌 연출을 보면서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감동은, 감정적인 감동이 아니라, 경외감이랄까, 어떤 새로운 경지를 알았음이 느껴지는 순간을 일컫는 것이겠다.
내가 감동을 받았던 순간은, 어떤 '벽'을 통과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GW베이직으로 제일 처음 만든 16-퍼즐이 돌아가던 순간. C로 (그 유명한) Hello, world 를 출력해본 순간. 내손으로 DPMI를 써서 SVGA모드에서 돌아가는 게임을 만들어본 순간.
내가 어떤 '벽'을 통과했으며, 그 앞에 있는 벽도 뚫을 수 있을것 같은 방법을 희미하게 알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그중에서 제일은 역시, 객체지향의 본질을 (내 나름대로)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객체에서 객체로 이어지는 그 일관성의 흐름. 그리고 그 일관성의 흐름을 내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 그 순간. 내 손으로 어떠한 세상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되는 그 순간.
뭐랄까. 비유하자면, 산속 계곡에서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좁다란 하늘만 올려다보면서 산을 오르다가 정상에 오르니 내 발아래 세상이 이렇게 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정상에 오르니 그동안 지나쳐왔던 풀잎도, 나뭇가지도, 돌맹이도, 물방울도, 모두 산을 이루고 세상을 이루던 것들이었다는 통찰감. 그리고 정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더 큰 산이 옆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좌절감과 두려움, 그리고 기쁨까지.
역시나, 이러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긱geek들은 바로 저런 느낌을 느낀 적이 있었기에, 그렇게 한 분야에 골몰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느낌을 전달하고 공감하기 어렵기에, 그래서 긱이 왜 그렇게 긱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닐까.